바이러스 이름에 한국의 강이? 세계를 뒤흔든 '한타바이러스'의 유래와 비하인드 스토리

우리가 매일 뉴스나 영화에서 접하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들의 이름은 대개 어디서 유래했을까요?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의 에볼라 강에서, 지카 바이러스는 우간다의 지카 숲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 의학 교과서에 당당히 등재되어 있으며,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치명적인 바이러스 중 하나에 한국의 지명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 주인공은 바로 ‘한타바이러스(Hantavirus)’입니다. 이 이름은 다름 아닌 경기도와 강원도를 흐르는 한국의 ‘한탄강(Hantan River)’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 세계 의학계를 뒤흔든 이 바이러스의 이름 뒤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한국 현대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습니다.

한타바이러스 어떻게 발견 되었을까요

6·25 전쟁터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질

이야기는 1951년, 6·25 전쟁이 한창이던 한반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전선에서는 총칼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군인들을 덮쳤습니다. 갑작스러운 고열과 오한, 그리고 온몸에 출혈이 일어나며 신장이 망가지는 정체불명의 ‘괴질’이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병에 걸린 UN군 병사만 무려 3,000여 명에 달했고, 그중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남북을 가리지 않고 군인들을 쓰러뜨리는 이 무시무시한 질병에 미군 의학자들은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대대적인 역학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세계 최고의 의학 전문가들을 한반도로 파견했고, 수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정체는커녕, 이 병이 어떻게 전파되는지조차 밝혀내지 못한 채 철수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과학 기술로는 포착할 수 없을 만큼 바이러스가 미세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고열 오한 출혈이 일어나며 신장이 망가지는 '괴질'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난제에 도전한 한국인 의학자

전 세계 의학계가 모두 두 손 두 발을 들고 떠난 이 난제에 겁 없이 도전장을 내민 한국인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의학계의 거목, 이호왕 박사입니다. 

이호왕 박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유행성 출혈열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연구 환경은 미군이 수백만 달러를 쓰던 환경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 실험 장비가 멈추기 일쑤였고, 연구비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이호왕 박사에게는 집념이 있었습니다. 그는 질병의 원인이 들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잡고, 전국의 휴전선 일대와 산야를 누비며 들쥐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을 무릅쓰고 맨손으로 들쥐를 채집하는 위험천만한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의학계의 거목, 이호왕 박사

이호왕 박사님 / 출처 나무위키

한탄강변의 들쥐, 세계적 발견의 열쇠가 되다

1976년, 마침내 연구를 시작한 지 수년 만에 결정적인 돌파구가 열렸습니다. 

이호왕 박사는 경기도 동두천 한탄강 유역에서 잡은 등줄쥐(Apodemus agrarius)의 폐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중, 이전까지 인류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바이러스가 바로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진짜 원인균이었습니다. 

미군과 세계적 석학들이 수십 년간 찾지 못했던 괴질의 실체를 한국의 토종 과학자가 완벽하게 규명해 낸 순간이었습니다. 이호왕 박사는 국제 관례에 따라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지역인 ‘한탄강’의 이름을 따서 이 바이러스의 이름을 ‘한탄바이러스(Hantan virus)’라고 명명했습니다. 

이후 이 바이러스가 속한 유전적 계통 전체를 아우르는 공식 학명인 ‘한타바이러스(Hantavirus)’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지명이 세계 의학사에 영원히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호왕 박사는 국제 관례에 따라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지역인 ‘한탄강’의 이름을 따서 이 바이러스의 이름을 ‘한탄바이러스(Hantan virus)’라고 명명했습니다


백신 개발까지 성공하며 전 세계를 구하다

이호왕 박사의 업적은 원인균을 발견한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1989년, 한타바이러스의 또 다른 종류인 ‘서울바이러스’를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대도시의 집쥐에서도 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나온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0년, 이호왕 박사 연구팀은 한타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백신인 ‘한타박스(Hantavax)’ 개발에 성공합니다. 한 질병의 원인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그 진단법을 만들고, 예방 백신까지 전 과정을 한 사람의 과학자와 그 연구팀이 모두 완벽하게 해낸 것은 세계 의학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타바이러스의 발견과 백신 개발은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과학 의학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손꼽히며, 이호왕 박사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생리의학상 후보 명단(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선정 예측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한타 백신의 개발은 한 사람의 집념이 전 세계의 생명을 지켜낸 자랑스러운 순간 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탄강의 유산

오늘날 한타바이러스는 전 세계 공통어로 사용되며 아메리카 대륙의 ‘신증후군 출혈열’이나 유럽, 아시아의 유사 질병을 연구하는 핵심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한탄강의 이름 뒤에는, 인류를 괴롭히던 치명적인 괴질을 잡아내기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쳤던 한국인 과학자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습니다. 

캠핑이나 트래킹 명소로 유명한 한탄강을 방문하게 된다면, 혹은 뉴스에서 '한타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면 이제는 단순한 공포 대신 세계 의학계를 뒤흔들었던 대한민국 과학의 자랑스러운 순간을 함께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 자료

미국 국립보건원 국립의학도서관 (NIH / PMC) 
* 자료명: A Global Perspective on Hantavirus Ecology, Epidemiology, and Disease (Clinical Microbiology Reviews) 

미국 항공우주국 지구데이터 (NASA Earthdata) 
* 자료명: Tracking Pathogens: Hantavirus Risk M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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